4711 오리지날 오드콜로뉴, 상큼하고 중성적인 향(저렴하지만 깊이있는 향)
4711 오리지날 오 드 콜로뉴.
이 향수는 여성성, 남성성이 부각되지 않으면서 향이 맑아서 제가 아끼는 향수입니다.
향이나 병의 외관을 봤을때, 그래도 좀 값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저렴하게 팔고 있는 향수에요.
4711 오리지날 오드콜로뉴 향수는 상당히 옅고 강렬한 향입니다.
앞뒤가 안맞는 말같은데, 저는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 향수는 상당히 짙은 남자향수에 물을 타서 찻물로 우린 것 같은 느낌의 향이에요.
간단히 물을 탄 향이라기엔 향이 옅으면서도 깊이있게 잘 표현되어 있고, 가만히 맡아보면 향조가 느껴지는, 마치 다도를 하듯이 차분하게 맡아봐야 느껴지는 향입니다.
강렬한 향수에서 주로 느껴지는 향조를 순수하고 깨끗하게 잘 우려낸 느낌이에요.(그렇다고 차향이 난다는 뜻은 아니고요.)
그래서 중성적으로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사용하기 좋은 것 같습니다.
가끔씩 남자 향수도 '조금만 연하게 하면 여자가 사용하기 좋은 것 같은데, 진짜 물에 타서 한번 사용해볼까?' 싶었던 향들이 있거든요. 이 향수가 딱 그렇게 나온 향인 것 같아요.
제가 처음에 중성적인 향이라고는 했지만, 향조는 남자 향수에 좀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 남자향수 특유의 강렬함을 말씀드렸듯이 묽게 우려서 여자가 사용하기에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이 향수는 향에 대해 뭔가 딱 짚어서 말하기가 어려운 느낌인데, 그나마 한가지 떠오르는 향조는 레몬입니다.
살짝 남자버전 레몬향 같은 느낌이에요.
너무 레몬레몬한 향은 방향제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 향은 딱 향수로써 레몬향을 잘 표현한 느낌이에요.
데낄라 같은 강한 술을 커다란 잔 밑에 조금 깔리게 따라서, 레몬 한조각과 설탕 약간, 얼음을 많이 넣어서 녹아가는 그런 알콜 음료를 빨대로 막 섞어주면 이런 향이 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약간의 짙은 풀향 같은것도 있는 것 같아요.(말씀드렸던 향이 짙은 풀을 차로 우린 느낌)
계절로 말하자면 여름의 느낌인데, 축축한 한국 여름이 아니고 지중해 바닷가처럼 흰 모래가 건조하게 부서지면서 바람에 날리는 가운데 저 물 많이 탄 데낄라+레몬 음료를 빨대로 한모금씩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딸그랑 하고 다 녹은 얼음이 유리잔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가 날 것 같은.
기본적으로 코에 갖다 대어야 향이 느껴질만큼 옅은 향이지만, 또 가까이 맡으면 은근 향이 강렬한 느낌이라.. 뭔가 섹시함이 있는 향입니다.
섹시함이란게 성숙하거나 무르익어서 나는 그런 느낌이라기보다,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갔다가 점점 알게되면 알게 될수록 은근히 그 사람만의 개성이나 특징이 느껴지면서 반전 매력에 빠지게 되는 느낌이에요.
예전에 지인 언니가 어떤 남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이 향수에서 그 지인 언니가 얘기해준 남자가 떠올랐어요.(저는 그 남자를 본적은 없습니다만.)
어떤 남자가 흰색 반바지를 입고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그 남자는 전체적으로 슬림하고 그렇게 남성적이지 않은 스타일이었답니다.(이 언니는 좀 남성적인 스타일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남자의 다리가 길쭉하게 얇고 예뻐서, 이 언니가 부럽게 그 다리를 쳐다봤데요.
한쪽 다리를 접어서 무릎위에 책상다리처럼 걸쳤는데, 다리에 살짝 노란빛이 도는 얇게 난 털들이 보였답니다.
햇빛에 비쳐서 금색으로 보이는. 근데 순간적으로 그 다리, 다리털이 그렇게 섹시하게 보였다고 하더군요.ㅋㅋ
당시에는 제가 아직 섹시함이란 것에 눈을 못뜬건지... 그 언니의 묘사와 감상이 참 뜬금없다 싶었거든요.
근데 그 이미지가 왠지 저에게도 좀 남았던 것 같아요. 본적도 없는데 말이죠.(이게 젤 신기함ㅋ)
어쨌든 이 향수에서 그런 이미지가 느껴졌습니다.
별로 관심 없고,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눈에 띄지도 않는 스타일인데.
어쩌다 보게되면 빠져드는 그런 사람, 그런 이미지의 향인 것 같아요.
흰색 면이나 린넨셔츠 입고 베이지색 면바지에 진한 갈색 벨트, 그리고 이 향수를 뿌리면 제가 말씀드린 그런 이미지가 잘 살아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너무 구체적이었나요?ㅋㅋ 아무래도 제가 그 지인 언니가 얘기한 남자의 이미지를 너무 생각했던가봐요.
한마디로 좀 기본적이고 단정한 스타일인데, 살짝 엣지있게 꾸민 그런 사람이 뿌려주면 의외성이 느껴질 것 같은 향수입니다.
이 향수를 몇번 뿌려본 바로는...
제가 쓰는 향수에는 스프레이 구조가 없어서 옛날 유럽 성당에서 성수 뿌리듯이 뿌려줘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면 어쨌든 왈칵 향수를 쓰게 되는데, 그렇게까지 뒤집어 쓰듯 뿌려도 향이 금새 날아가버립니다.
보통은 그래도 옷에 뿌려두면 시간이 가도 그 뿌려준 부분에 코를 대면 냄새가 남아있게 마련인데... 이 향은 그런게 없어요.
그만큼 휘발이 잘 되는 느낌입니다.
뿌리고 나면 훅하고 강렬한 남자 향수냄새가 끼쳐나오지만(그것도 약한 편) 그건 진짜 2~3초만에 날아가버립니다.
그 2~3초가 지나면 저는 왠지 그 잔향이 약간 옛날 문방구 냄새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옛날 문방구는 특유의 인쇄용지 냄새와 지우개 냄새같은게 나는데, 그 향이 저에겐 은근 향기로웠거든요.
요즘 분들은 잘 모르실텐데, 대강 새 노트를 펼치면 나는 향기로운, 가공된 종이향 정도로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문방구 냄새는 그것보다 좀 더 깊긴 하지만요.ㅋ
암튼 저는 이 느낌도 좋았어요.
잘 날아가기도 하고, 향이 옅기도 하고, 뭔가 반전매력이 있는 향수라 저는 이 향을 손목같은 곳보다는 겨드랑이 보다 좀 낮은 팔 안쪽같은, 살이 자주 겹치는 곳에 발라주는게 좋았어요.(하지만 귀찮아서 대체로 옷에 급하게 뿌리고 나가버리는..ㅋ)
샤워하고 나서 뿌려주는 용도로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는 땀이 많아서 이런걸 몸에 뿌려주면 그 부위만 끈적하게 느껴져서 맨몸에는 안뿌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일이랑 함께 발라주기도 합니다. 오일은 끈적함보단 특유의 기름기가 제 땀이랑 자연스럽게 섞이는 느낌이거든요.
오일이 향의 지속력을 지켜주기도 하고요.
제가 남성, 여성이라고 구분을 하긴 했는데.
이건 기존 향수가 남성용이면 전형적인 향이 딱 있고, 여성이면 꽃향 혹은 달달한 향... 이런식으로 그동안 향수가 전형적인 느낌이 있었어서 그렇게 표현을 한거에요. 남자향수는 왜 그렇게 코를 때리는 향이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원료가 더 많이 들 것 같기도 하고요.ㅋㅋ
암튼... 이 4711 오리지날 오드콜로뉴 향수는 저렴한 편인데도 나름 깊이 있고, 개성있는 향인데 생각보단 많이 알려지지 않은 향수인 것 같아요.(그래서 더 좋아합니다.)
단점은 지속력이 짧다는 것인데, 갖고 다니면서 수시로 뿌려주기엔 괜찮은 것 같아요.
저한테 있는 25ml 용기는 꽤 귀엽고 예뻐서 갖고다니기에도 좋은 것 같아요.(요즘 유행인 가방꾸미기로도 괜찮을 것 같은)
다만 스프레이는 좀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